복잡계이론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위하여
지난 20∼30여 년 동안 복잡계이론에 대한 관심은 매우 빠른 속도로 증폭되어왔다. 자연과학의 한가운데로부터 시작되어 사회과학과 인문학, 심지어 예술의 영역까지 확대되고 있는 복잡계의 패러다임은 이제 이것이 단순한 일회성 유행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잘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복잡계이론에 대한 높은 관심과는 달리 국내 연구자들 사이에서 이론적 지식과 연구 경험의 축적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복잡계에 관한 대중적 소개서들이 발간되면서 일반 대중들의 관심은 크게 늘어났지만, 실질적인 연구 작업들은 그다지 효과적으로 전개되지 못하고 있다. 복잡계 관련 연구들이 사회 일반으로 널리 적용되기에는 여러 장벽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자는 사회현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사회과학자는 방법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양자의 결합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이로 인해 이것이 현실문제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안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지 못했다. 

이 책은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복잡계에 대한 학제간 교류와 심층적인 연구의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이루어진 노력의 결과이다. 2005년 말에 결성된 복잡계 네트워크는 사회, 경영, 경제, 행정, 정치학에 걸친 다양한 사회과학 분야와 자연과학으로부터 파생된 경제물리학과 사회물리학을 포괄하는 학자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열린 연구를 지향하는 복잡계 네트워크는 첫 번째 시도로 2006년 4월에 열린 워크샵을 개최하였다. 30여 명의 연구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1박 2일간 열린 워크샵에서 12편의 논문이 발표되고 각 논문당 두 명씩의 지정 토론이 이어졌다. 정치, 행정, 경제, 경영, 사회, 물리 등 각 분야 전공자들이 함께 모인 가운데 복잡계이론의 사회과학적 활용이라는 공통 주제를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서로 다른 이론틀과 개념, 방법으로 인하여 그동안 학제간 교류가 거의 불가능했지만 복잡계이론이라는 공통의 이론적, 방법론적 도구를 통해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게 되면서 대화의 문을 활짝 열 수 있었다. 이 책은 이와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워크샵에서 발표되었던 논문과 토론내용들을 편집한 것이다.

이 책의 구성
이 책의 각 장은 한 편의 발표논문과 두 편의 토론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발표논문은 각 학문 영역에서 복잡계이론이 어떻게 도입되고 적용되고 있는지 그 현황을 살펴보고 향후 연구과제를 제시하는 것을 기본 내용으로 하고 있다. 각 발표 논문에 뒤따른 토론문 중 앞의 것은 동일 분야 전공자의 토론문이고, 뒤의 것은 타 분야 전공자의 토론문이다. 학제간 교류를 촉진한다는 의미에서 각 발표문마다 전공이 다른 연구자의 토론이 의도적으로 배정되었다. 이 책에는 크게 네 개의 세션(사회 네트워크와 다이내믹스, 금융과 경제, 조직과 정치, 이론적 이슈)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총 12개 주제의 논문과 토론이 실려 있다.

SESSION 1 사회 네트워크와 다이내믹스
사회 현상에 대한 복잡계적 분석을 다룬다. 
제1주제 ‘복잡계와 사회구조’에서는 복잡계이론과 사회학의 관계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사회학의 전통적 관점들이 미시-거시 수준의 연계성과 관련하여 이론적 메커니즘을 제대로 구현해내지 못한 반면 네트워크 분석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으며 행위자들의 적응성, 사회구조의 역동성, 그리고 네트워크 사회의 변동과 위험을 파악하는 데도 복잡계이론이 도움을 줄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제2주제 ‘사회현상의 다이내믹스’에서는 사회 변화의 동학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글에서는 복잡계이론이 사회학의 영역에서 적용될 수 있는 세부적인 주제로서 사회 환경의 복잡성과 그에 대한 조직의 진화, 도시공간의 형성 및 변천, 그리고 사회운동의 역동성을 소개하면서 이들 각각의 영역에서 복잡계이론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과 한계를 동시에 논하고 있다.
제3주제 ‘복잡계로서의 사회와 사회물리학’에서는 사회물리학이라는 생소한 영역에 대한 소개가 이루어진다. 사회물리학은 통계물리학의 영향을 받아 자연현상뿐 아니라 사회현상에서도 보편성이 존재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이루어지는 학문 분야이다. 특히 복잡계이론이 미시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거시적인 현상을 이해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물리학의 주제는 복잡계의 핵심을 이룬다고도 볼 수 있다. 분자동역학이나 세포자동자 모형, 그리고 행위자 기반모형을 이용한 사회적 현상의 분석은 이러한 점에서 사회물리학의 핵심적인 연구 분야로 자리 잡고 있다.

SESSION 2 금융과 경제
금융과 경제 분야에의 복잡계이론의 적용이 다루어진다. 
제4주제 ‘경제물리학과 복잡 네트워크’에서는 1990년대 이후 발전해온 경제물리학 분야의 연구 현황이 소개되고 있다. 경제물리학은 크게 세 분야로 나뉘는데, 첫째는 시계열 데이터의 복잡계적 특성을 분석하는 분야, 둘째는 행위자 기반 모형을 활용하여 복잡한 경제현상을 설명하려는 분야, 셋째는 복잡한 현실을 네트워크 측면에서 접근하고 분석하는 분야이다. 이러한 세 분야의 구분은 복잡계적 접근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해주는 구분이라고 할 수 있다.
제5주제 ‘금융시장과 복잡계’에서는 금융시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자산 간 상호작용을 경제물리학의 방법, 특히 네트워크 접근법을 활용하여 이해하고 분석하려는 노력들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최근 경제물리학에 의해 제안된 MST 방법을 이용하여 주가 시계열의 상호 상관계수에 기초한 금융시장 네트워크를 도출하고, 그 네트워크의 구조, 동적 특성 등을 파악하려는 노력들을 소개한다.
제6주제 ‘경제적 진화와 복잡계 경제학’은 경제 주체의 분권화된 상호작용이 어떻게 거시적인 질서의 발현과 경제의 동태적 변화로 연결되는지에 대한 진화경제학적 연구들을 살펴보고 있다. 크게 두 흐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 있는데, 첫 번째 흐름은 미시와 거시의 연계를 다룸에 있어 진화적 게임이론에 기반한 연구와 동역학적 학습과정을 도입한 연구이고, 두 번째 흐름은 진화적 패러다임을 기술혁신과 경제변화라는 주제에 응용한 신슘페터주의의 접근이다.
제7주제 ‘거시경제와 카오스 동학’에서는 경제성장 및 경기변동 분야에서 카오스 관련 연구들이 어떻게 진행되어왔는가를 정리하고 있다. 이론연구와 실증연구로 구분하여 검토하고 있는데, 이론 분야에서는 기존 경제동학 모형에서 중요 모수가 특정 범위의 값을 가질 때 카오스적 변동이 내생적으로 발생할 수 있음을 분석적으로 입증하려는 노력이 주로 수행되어져왔고, 실증 분야에서는 GDP, 통화량 등 거시경제 시계열자료에서 카오스 구조의 존재를 검정하려는 노력이 주로 이루어져왔음을 보여준다.

SESSION 3 조직과 정치
행정과 경영에서의 조직에 대한 복잡계적 접근과 국제정치에서의 복잡계적 접근이 소개된다. 
제8주제 ‘복잡계와 행정조직’에서는 조직학 및 행정학 분야에서 복잡계이론이 얼마나 적합하게 응용될 수 있는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글에서 필자는 고전적 조직이론과 자기조직화의 관념에 근거하는 새로운 조직이론을 비교하고 있다. 나아가 복잡계이론이 조직의 연구에 도입되면서 부각되고 있는 유사한 이슈들, 예를 들어 창발성과 도가사상의 연계성, 경로의존성과 신제도이론, 그리고 공진화와 조직의 적합도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제9주제 ‘복잡계적 조직연구의 쟁점과 과제’는 경영학적 관점에서 복잡계이론이 조직연구에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논의하고 있다. 필자들은 조직연구에 있어서 과연 복잡계이론이 필요한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다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면서 복잡계이론의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수사(rhetoric)’를 넘어선 현실분석과 구조편향성을 벗어난 개체연구가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라고 주장한다. 
제10주제 ‘국제관계의 변화와 복잡계 패러다임’에서는 국제관계의 연구에서 복잡계이론이 적용되는 추세와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다루고 있다. 필자는 복잡계이론이 국제관계의 연구에서 도입되고 있는 여러 가지 모습들을 인식론과 이론, 그리고 방법론의 차원으로 나누어 논의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복잡계이론틀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패턴과 환원주의적 메커니즘의 강조, 다양한 국제정치현상의 이론화, 그리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의 새로운 전환 등과 같은 추세들은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SESSION 4 이론적 이슈
복잡계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는 데서 제기되는 이론적 문제 중 두 가지 문제를 다루고 있다. 첫째는 예측과 통제이고, 둘째는 복잡성의 척도이다. 
제11주제 ‘복잡계이론에서 예측·통제·적응의 문제’는 복잡계에서의 쟁점사항인 예측과 통제, 더 나아가서 적응이라는 이슈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기존의 복잡계이론 체계가 자연현상의 설명에 집중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복잡계이론은 예측과 통제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성향이 있다. 과연 그럴까에서 출발하여 예측과 통제에 대한 올바른 복잡계적 접근과 불확실성 증대에 따른 적응의 중요성에 대해 논하고 있다. 
제12주제 ‘복잡도와 그 응용’은 복잡성을 어떻게 정량화할 것인가의 문제를 다룬다. 다양한 복잡도에 대한 연구를 정태적 및 동태적 양면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 있는데, 이들 다양한 복잡도들이 복잡계 연구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실용적인 문제에 어떻게 응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논하고 있다.

비록 복잡계이론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한순간의 유행으로 끝날지 아니면 전통적인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재다능한 이론적 도구가 될지는 좀더 두고 보아야겠지만, 현실과 학문 사이의 괴리로부터 무엇인가 새로운 대안을 찾아 나서기 위한 파일럿 작업으로서 이 책의 출간은 나름대로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 하겠다. 나아가 이 책을 바탕으로 하여 복잡계이론의 활용 범위가 사회과학을 넘어 인문학과 예술 분야에까지 확장되는 초(超)학문적 패러다임의 공유와 이론적 교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Posted by 난장땅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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